⟨김학의 보고서⟩ 보는 법

나는 2019년 5월27일 세상에 나왔습니다. 몸집은 A4 사이즈, 전체 1249쪽, 두께 140mm, 몸무게 5.99kg. 200자 원고지 기준 1만553쪽 분량입니다. 공식 이름은 ⟨검찰 과거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진상조사 결과 보고-김학의 차관 성접대 의혹사건⟩입니다. 흔히 ⟨김학의 보고서⟩라 불립니다.

2017년 12월12일 꾸려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 위원회)가 산파 노릇을 했습니다. 법무부는 2017년 8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서울대 교수)’를 발족시켜 검찰 개혁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그해 9월29일 ‘검찰의 과거 인권침해 및 권한남용 의혹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라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권고했습니다. 검찰이 과거사를 반성해야한다는 목소리는 법무부에서만 나온 건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인 문무일 총장(2017년 7월~2019년 7월)은 검찰개혁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국정 100대 과제로 선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도 대비해야 했습니다. 문 총장은 2017년 9월 대검찰청(대검) 산하에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를 꾸립니다. 문 총장은 청와대와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찰 개혁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심산을 내비쳤습니다.

대검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에는 민간위원 16명과 현직 대검 간부 2명이 포진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이 검찰개혁위원회에서도 2017년 10월30일 과거사 반성을 문 총장에게 권고합니다. “검찰총장은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가칭)의 조속한 설치와 실효적 운영이 검찰개혁의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하고 위원회 설치에 관해 법무부 장관과의 협의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등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문 총장도 권고에 응합니다. 당시 문 총장은 “과거사 위원회는 외부인으로만 구성할 생각입니다. 위원회에서 조사대상을 정하면 직접 기록을 살펴보는 과거사 점검단 업무는 법률상 감찰 활동의 일환이기에 검찰 공무원이 맡게 될 것입니다”라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감찰을 이유로 들었지만 조사의 주도권을 검찰이 쥐고 싶어 했습니다.

법무부와 대검 협의로 이원화 구조로 검찰 과거사 조사가 이뤄집니다. 대신 대검 산하 기구에도 민간위원들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해서 법무부에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김갑배 변호사가 위원장을, 김용민·송상교·임선숙 변호사, 문준영(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원혜욱(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정한중(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리고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이 위원을 맡았습니다.

대검 산하에도 과거사 진상조사단(과거사 진상조사단)이 꾸려졌습니다. 교수 12명, 변호사 12명, 검사 6명 등 총 3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과거사 위원회(법무부)가 조사 대상 사건을 선정하면 과거사 진상조사단(대검)이 조사를 하는 구조였습니다.

대검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나를 만들었습니다. 진상조사단 가운데 조사8팀입니다. 원래는 조사5팀 담당이었습니다. ‘조사 5팀이 피해 주장 여성에게 2차 가해성 질문을 하는’ 등 여성 측 대리인단 요구로 조사8팀에 재배당되었습니다. 이 팀에는 이근우(가천대 법학과)·황태정(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영희·배진수 변호사, 이규원·최준환 검사가 속해있습니다(박준영 변호사는 2019년 1월2일 사퇴하고, 그 뒤 배진수 변호사가 합류).

조사8팀은 나를 과거사 위원회에 전달했습니다. 과거사 위원회는 2019년 5월29일 나를 심의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과거사 위원회는 “검찰 수사단이 성역 없이 엄정한 수사를 하고, 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를 엄정히 수사 기소할 수 있는 제도로서 공수처 설치를 위한 입법적 논의에 법무와 검찰이 적극 참여하고, 성범죄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률개정에 착수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2019년 5월9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오른쪽)이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19년 6월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과거사 위원회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고 밝혔습니다. 문 총장은 ‘김학의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김학의 사건 자체도 부끄럽지만 과거 검찰의 두 차례 수사에서 왜 이걸 밝혀내지 못했는지가 더 부끄럽습니다. (당시 수사팀이) 검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검찰총장이 비교적 최근 사건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며 사과를 표명한 이때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사과는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립 서비스’에만 그쳤습니다. “‘그럼 왜 문책을 안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법률상 문책 시효가 지났습니다. 밝힐 수 있는 것을 못 밝히고 이제 와서 시효가 지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부끄럽습니다.” 검사 징계 시효(3년)나 직무유기 혐의 시효(5년)를 핑계로 검찰이 제 식구를 감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과거사 위원회 활동으로 징계에 회부된 검사는 한명도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2년 뒤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나는 ⟨한국일보⟩와 SBS에 전달되었습니다. 과거사 조사단 조사8팀 소속이었던 박준영 변호사가 두 언론사에 제공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김학의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라며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이와는 다른 경로로 나는 ⟨시사IN⟩에도 전달되었습니다. ⟨시사IN⟩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일부를 발췌해 여러분에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시사IN⟩은 ‘자료 독점’이 ‘평가 독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분이 공론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물론 나도 한계가 있습니다. 수사권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자료 조사’와 ‘진술 청취’에 그쳤습니다. 자료는 윤중천·김학의 관련 19개 사건의 경찰과 검찰 수사 자료(3만여쪽)입니다. 진술 청취는 강제 조사권이 없기에 관련자 일부는 진술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청취 대상자의 진술서와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일부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되었습니다. 조사8팀 소속 위원들은 여성들의 피해 여부 해석을 두고 세 갈래로 의견이 갈리기도 했습니다. 과거사 조사단 활동 종료 시간에 쫓겨 마무리한 듯한 흔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2013년 경찰과 검찰 수사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공개로 또 다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2차 가해와 명예훼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사IN⟩ 자문 변호사 검토를 거쳤습니다. 과거사 조사단 위원들의 평가 부분을 위주로,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러분에게 공개됩니다.

보고서 Ⅰ, 보고서 Ⅱ, 보고서 Ⅲ 도입부에 간단한 해설을 달았습니다. ⟨김학의 보고서⟩ 전문을 검토한 변호사들의 의견도 추가했습니다.

여러분이 배심원이 되어 ‘김학의 사건’을 정의(定義)해 주세요. 이 사이트 첫 화면에 그 정의를 써주세요.

글: 고제규 김은지
구성 디자인: 안희태
인포그래픽: 최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