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사건’이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6월10일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연합뉴스

당신은 ‛김학의 사건’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동영상? 한밤중 출국? 불법 출국금지?….

저희는 ‘검찰’이 떠오릅니다. 2013년 ‘김학의 사건’을 처리한 바로 그 검찰입니다. 자, 이제 저희와 함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김학의 사건’을 살펴보시죠. 좀 깁니다. 커피 한잔 하며 설명을 읽어주세요.

다들 기억하시죠? 검찰은 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때 김 전 차관에 대해 두차례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김학의 동영상’ 화면 속 남성을 ‘김학의’라고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검사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라도 된 걸까요?

저희가 입수한 ⟨김학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김학의 보고서⟩에는 2013년 1차 수사 자료가 광범위하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2013년 누가, 왜, 어떻게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을까요? ⟨김학의 보고서⟩와 당시 수사를 잘 아는 관계자들을 취재해 ‘김학의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2013년 3월13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김학의 대전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했습니다. 다음날 언론에 ‘김학의 동영상’이 보도되었습니다. ‘김학의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진 발단은 윤중천씨와 내연관계였던 ㄱ씨 사이 돈 문제였습니다. ㄱ씨는 윤씨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다며 윤씨 소유 원주별장에 근저당권을 설정했습니다. 둘은 2012년 10월부터 서로 고소·고발을 합니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윤중천씨는 아내를 통해 ㄱ씨와 자신을 간통혐의로 고소하게 했습니다. ㄱ씨는 그해 11월16일 윤중천씨를 합동 강간 및 상습공갈 혐의로 고소하기도 합니다. ㄱ씨는 또 윤씨에게 제공한 벤츠 승용차 회수에 나섭니다. ㄱ씨 부탁을 받은, 유명 골프 선수 아버지 박아무개씨는 벤츠 승용차에서 ‘김학의 동영상’ CD를 발견했습니다.

‘김학의 동영상’ 보도 뒤 3월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수사에 나섰습니다. 이게 2013년 1차 수사의 시작입니다. 3월20일 김학의 차관은 사퇴했습니다. 한창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경찰 인사가 났습니다. ‘김학의 사건’ 수사라인에 있던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이 울산지방경철장(4월5일)으로, 이세민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4월15일), 반기수 경찰청 수사국 범죄정보과장은 성남수정경찰서장으로(4월18일), 이명교 특수수사과장은 국회경비대장으로(4월18일) 전보됩니다. 경찰 수사 지휘 라인이 전부 바뀐 것입니다.

경찰은 윤중천씨에 이어 김학의 전 차관 조사에 나섭니다. 김 전 차관은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경찰은 2013년 6월18일 검찰에 김 전 차관의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검찰은 다음날 반려합니다. 김학의 전 차관은 맹장수술 등을 이유로 4차례나 경찰 소환통보에 불응합니다. 결국 경찰은 6월29일 김 전 차관이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가 조사했습니다.

7월10일 윤중천씨를 구속한 경찰은 성폭행 혐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7월18일 경찰은 ㄴ, ㄷ, ㄹ 여성을 특정해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 특수강간 혐의 등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합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뇌물 및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건설업자 윤중천씨.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8월6일 윤중천씨를 사기, 경매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그해 11월2일 김학의 전 차관을 비공개 소환 조사합니다. 11월11일 김 전 차관을 혐의없음 처분합니다. 말 그대로 혐의가 없다는 겁니다.

검찰은 윤중천씨에 대해서만 건설사 임원에게 사업 수주를 받기 위해 300여만원 제공(배임 증재)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타인에게 보여준 혐의(협박 및 명예훼손 등)로 추가기소합니다. 1차 수사 때 사기 등 혐의로만 기소된 윤중천씨는 벌금 500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1차 수사 주임검사는 김수민 검사였습니다. 지휘 라인은 윤재필 강력부장, 박정식 차장검사,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었습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낙마해, 길태기 대검 차장이 지휘 보고 라인에 있었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하며 윤재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은 “성접대 동영상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조사할 피해 여성도 없는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으로 사또식 수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동영상에 김학의 전 차관이 등장하느냐”고 질문했죠. 윤 부장검사는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 언급하기 부적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윤재필 강력부장은 “4개월간 관련자 64명을 140회 조사하고 원점에서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 수사했지만 혐의를 인정할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대상에서 김학의 전 차관은 빠져있었습니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이 11월2일 김 전 차관을 소환조사해 받은 신문조서가 달랑 2쪽이었다고 합니다. “거짓 진술로 일관한 김학의에 대한 수사내용은 피의자 신문조서 2쪽에 불과하였고 그마저도 형식적인 기록에 그쳤다”라고 ⟨김학의 보고서⟩에 쓰여 있습니다.

2013년 윤중천·김학의 전 차관이 성범죄 혐의로 기소조차 되지 않자, 2014년 7월9일 ㄴ씨가 ‘김학의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자신이라며 두 사람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합니다. 이게 2차 수사입니다. 검찰은 2013년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합니다. ㄴ씨가 항의하자 검사를 교체한 뒤 2015년 1월7일 서울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는 윤중천씨와 김 전 차관을 다시 무혐의 처분합니다. 검찰은 ㄴ씨가 동영상 속 여성인지 불분명하다며 이때도 ‘김학의 동영상’ 속 남성을 ‘김학의’라고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김학의 보고서⟩ 전문 1249쪽을 변호사 4명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의뢰했습니다. 각각 전문성과 성별을 고려해 검찰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변호사, 재심 전문 변호사, 젠더 전문 변호사를 선정했습니다.

⟨김학의 보고서⟩를 본 변호사들은 2013년 1차 수사 문제점을 세 가지로 압축했습니다. 먼저 뇌물 혐의로 강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 전 차관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여러 여성들의 진술에서 확인됩니다. 경찰이 성폭행 혐의로 송치했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단계에서 뇌물 혐의로 김 전 차관을 수사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1차 수사 검사는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경찰 송치 사건이므로 경찰이 송치한 죄명과 범죄사실에 충실하게 수사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윤중천이 아무런 대가 없이 김학의에게 성접대를 했겠습니까. 공무원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으면 검사는 당연히 뇌물 혐의를 떠올려야 합니다. 사법 시험 준비할 때 수험서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뇌물죄 구성요건인 재산상 이익에는 향응, 즉 성접대도 포함됩니다. 아마 수사 검사도 뇌물 혐의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쪽으로 안 간 겁니다. 못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죠. 뇌물죄 공소시효 핑계를 대서도 안 됩니다. 조사를 해보고 시효를 따져도 됩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그랬을까요?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성폭행 혐의로 수사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만 특정하면 되니까 압수수색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성접대로 보고 뇌물 혐의로 수사하면 압수수색이 기본입니다. 김 전 차관에 대해 통신, 계좌, 자택, 사무실 등 광범위하게 압수수색 해야 합니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압수수색입니다. 언제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모릅니다. 메모지 한 장에서 뇌물 혐의와 관련한 유력 증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꽤 있습니다.”

2019년 4월 검찰이 처음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김학의 전 차관은 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때도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압수수색은 2019년 4월에야 처음 이뤄졌습니다. ⟨김학의 보고서⟩를 검토한 변호사들은 “검찰 고위 간부(김학의)가 연루되지 않았다면 검찰이 이렇게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 1차 수사와 비슷한 시기에 윤중천-김학의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 식품업체 대표가 공공기금을 지원받게 해달라며 경기도 안성시 공무원 두 사람에게 4차례에 걸쳐 성접대 등 8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건넸습니다. 식품업체 대표는 뇌물 공여 혐의로, 성접대를 받은 공무원들은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2013년 2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기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해 11월,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검사들은 김 전 차관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했습니다.

2013년 2월 형사3부 사건과 11월 강력부 사건은 뇌물을 준 쪽은 사업가, 받은 쪽은 공무원으로 구조가 똑같습니다. 두 사건에서 다른 점은 성접대를 포함한 뇌물을 받은 쪽이 검찰 고위인사였다는 점입니다.

여성들의 성폭행 진술에 주목한 변호사들도 있었습니다. 검찰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의 진술 전체를 탄핵할 게 아니라 행위별로 분류한 뒤 윤중천·김학의를 성폭행 혐의로 기소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피해여성들을 접대부로 단정하고 성폭행이 아니라는 논리로 연결시켰습니다. 경찰 송치 내용을 보더라도 여성들은 최초 1회나 2회 윤중천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런 동일한 패턴이 보이는데 검찰은 성폭행 혐의를 전부 무시했습니다. 사실상 ‘피해자 심판 수사’로 보입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 의지가 있었다면 성폭행 혐의를 ‘주위적 공소(주된 범죄사실)’로, 성접대에 해당하는 뇌물 혐의를 ‘예비적 공소(주위적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로 삼아 기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역시 유사 사례가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과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재판 도중 예비적 공소사실로 직무유기 혐의를 포함시켰습니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라는 상충되는 법리를 공소사실에 동시에 담아 재판부에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김학의 전 차관에게는 무뎌진 셈입니다.

⟨김학의 보고서⟩를 검토한 변호사들이 지적하는 1차 수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윤중천 개인비리를 무혐의 처분한 대목입니다. 2013년 1차 수사 때 윤중천씨는 저축은행 전무 김아무개씨를 통해 320억원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았습니다. 윤씨는 대출 과정에서 김 전무에게 주택을 제공했습니다. 불법 대출금을 받아 사용한 이도 윤중천씨였습니다. 당시 김 전무는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배임)로 구속기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윤씨가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저축은행 김아무개씨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이라고 항의했습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도 “윤중천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김 전무의 형량을 감형해주기도 했습니다. 배임 공모 무혐의 처분과 관련해 “김학의를 비롯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윤중천의 폭로성 진술을 막기 위한 방편은 아니었는지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김학의 보고서⟩는 지적합니다.

1차 수사 당시 윤중천씨는 김학의 전 차관과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술하지 않았습니다. 윤씨는 “김학의를 알긴 아는데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래서 김학의가 별장에 올 정도의 사이도 아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도 윤중천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1차 수사 때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가 언제 어디서 누구 소개로 만났는지 기초적인 사항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김학의 사건’은 암장됐습니다. 6년 뒤 과거사 위원회 조사가 진행되자, 2019년 3월22일 김학의 전 차관은 한밤중에 출국을 시도했습니다. 2019년 3월25일 과거사 위원회는 김학의 전 차관을 뇌물 혐의로 수사하라고 대검에 권고합니다. 또 1차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2013년 박근혜 청와대 당시 곽상도 민정수석과 이중희 민정비서관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김학의 보고서⟩에는 경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해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가 진행하다가, ‘석연치 않은 경위’로 성폭행 혐의로 바뀌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희는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를 만나 왜 성폭행 혐의로만 수사했는지 물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김학의라는 검찰 고위직이 포함된 사건이었습니다. 검사가 수사 대상이면 그동안 검찰이 영장을 내준 적이 없습니다. 윤중천에 대한 통신이나 계좌추적 영장도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어, 김학의 전 차관을 합동 강간혐의로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석연치 않은 경위’와 관련해 ⟨김학의 보고서⟩는 “경찰과 검찰 수사에 함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당시 청와대 이외에는 상정하기 어렵다”라고 썼습니다.

‘김학의 사건’ 3차 수사팀의 여환섭 수사단장. ⓒ연합뉴스

과거사 위원회 권고에 따라 3월29일 대검은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3차 수사팀)’을 꾸렸습니다. 특수통인 여환섭 당시 청주지검장이 수사단장을 맡았습니다. 3차 수사팀은 진상규명에 대한 3대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1차·2차 수사 때 ‘김학의 사건’이 왜 묻혔는지,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 처벌이 가능한지, 김 전 차관 외 윤중천씨한테 성접대나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은 누구인지 등입니다.

3차 수사팀은 이 세 가지 의혹 가운데 윤중천·김학의 처벌에만 주력했습니다. 윤중천·김학의 두 사람만 구속 기소하고 끝냈습니다. 3차 수사팀은 1·2차 수사에 관여한 전·현직 검사 8명을 12회 조사했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6월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여환섭 수사단장은 “혹시 (과거 1•2차 검찰 수사팀이) 외압을 받아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는지, 소극적으로 수사한 건 아닌지 조사했습니다. 더 엄격하게 조사를 하려면 (검사들을) 입건해야 합니다. 입건하려면 공소시효가 남아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검사 징계 시효 3년, 직무유기 공소시효 5년이 만료되어 더 수사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6월25일 김학의 사건 등을 사과한 문무일 검찰총장도 “(1차·2차 수사 검사들) 그럼 왜 문책을 안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법률상 문책 시효가 지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검찰 스스로 공소시효에 연연하지 않고 수사에 나선 적도 있습니다. 2016년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사건’ 때입니다. 이 사건 역시 검찰 스폰서 의혹이었습니다. 당시 대검은 “국민적인 비판 여론을 감안해 공소시효 만료 여부를 떠나 사실관계를 명확히 따져보겠다”라며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선 수사, 후 시효 검토’ 방침이었습니다.

3차 수사팀은 과거 1·2차 수사에 대한 내압도 외압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곽상도 당시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 이중희 당시 민정비서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어 불기소했습니다. 수사 도중 경찰 수사라인이 바뀐 인사도 정상이라고 3차 수사팀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3차 수사팀은 ‘윤중천 리스트’와 관련한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3차 수사팀은 수사에 착수할 단서가 없다며 수사를 종결해버렸습니다. 원주 별장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명함이나 윤중천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등은 수사 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019년 6월 3차 수사팀은 윤중천·김학의를 구속 기소합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2013년 3월 ‘김학의 동영상’ 의혹이 불거진 지 6년만이었습니다. 검찰의 ‘지각 기소’로 김 전 차관의 성접대 뇌물 혐의는 최종 무죄가 났습니다.

6월10일 대법원은 김 전 차관에게 2심 재판을 다시 받으라고 판결(파기 환송)했습니다.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김 전 차관이 석방됩니다. 지난해 10월28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지 8개월여 만에 출소했습니다.

이날 대법원은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항소심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지적했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사업가 최아무개씨는 법정 증언 전 검사를 만났습니다. 대법원은 최씨가 검사 면담 뒤 법정에서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검찰이 파기환송심에서 최씨 증언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김 전 차관은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이게 좀 복잡한데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커피 한잔이 더 필요하실 거 같네요.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윤중천씨, 사업가 최씨, 김아무개 저축은행 회장한테 각각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1심 무죄→2심 유죄→대법원 파기 환송 등 재판을 거치면서 각각의 뇌물 혐의에 대한 판단이 달랐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윤중천씨한테 받은 뇌물 혐의는 ‘뇌물 ①’, 사업가 최씨한테 받은 뇌물 혐의는 ‘뇌물 ②’, 저축은행 김 회장한테 받은 뇌물 혐의는 ‘뇌물 ③’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윤중천씨에게 받은 뇌물 ① 액수는 1억3000만원 가량입니다.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 ㄴ씨가 윤중천씨에게 갚아야할 채무 1억원을 김 전 차관이 힘을 써 면제해줬으며(제3자 뇌물수수), 윤씨한테 그림·현금·옷 등 3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윤중천 소유 원주 별장과 오피스텔 등에서 받은 13차례의 성접대는 ‘액수를 산정할 수 없는 뇌물’로 공소사실 뇌물 ①에 포함됐습니다.

사업가 최씨한테 받은 뇌물 ② 액수는 신용카드, 상품권, 차명 휴대전화와 통신요금 등 5100여만원, 저축은행 김 회장한테 받은 뇌물 ③ 액수는 1억5500만여원으로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2019년 11월22일 1심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의 모든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윤중천씨한테 받은 뇌물 ①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소송 조건이 결여돼 소송을 종결) 판결을 내렸습니다. 뇌물 ②, ③은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2020년 10월28일 2심 재판부는 최씨한테 받은 뇌물 ②를 달리 보았습니다. 뇌물 ② 가운데 4300여만원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도 뇌물 ①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보았습니다. 뇌물 ③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도 항소심 재판부의 뇌물 ①, ③ 판단을 그대로 인용했다. 대법원은 뇌물 ② 혐의와 관련한 최씨 증언의 신빙성만 지적한 것입니다.

결국 김학의 전 차관은 최씨 관련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만 다시 재판을 받습니다. ‘김학의 동영상’으로 상징되는 성접대 공소사실이 포함된 뇌물 ① 혐의는 사실상 최종 무죄가 난 셈입니다.

2019년 6월 검찰 과오와 관련해 대국민 입장을 밝히며 고개 숙이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연합뉴스

한편 윤중천씨도 강간 치상, 사기, 알선수재, 공갈미수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여성 ㄴ씨에 대한 성폭행(강간 치상) 혐의도 포함되었습니다.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은 윤씨의 성폭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윤씨는 사기, 알선수재 등 혐의만 인정되어 5년6개월형을 확정 받았습니다.

윤중천씨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손동환 부장판사는 2019년 11월15일 법정에서 특별히 피해여성을 언급했습니다. 손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은 국가 형벌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좌절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검찰이 2013년 당시 적절하게 검찰의 수사권·공소권을 행사했다면 피고인(윤중천)은 적정한 죄목으로 형사법정에 섰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검찰의 뒤늦은 기소로 윤중천씨의 성범죄,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뇌물 혐의는 법적으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2013년 누가 왜 어떻게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을까요? 3차 수사팀마저 관련 수사를 외면하면서 미궁으로 빠졌습니다. 이렇게 ‘지연된 정의’마저 암장되었습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 활동으로 검찰이 어떻게 이 사건을 암장했는지 그 흔적의 일부가 ⟨김학의 보고서⟩에 담겨 있습니다.

⟨김학의 보고서⟩를 읽고, 당신이 생각하는 ‘김학의 사건’ 정의(定義)를 내려주세요. 이 사이트 첫 화면에 그 정의를 써주세요.

‘김학의 사건 아카이빙 프로젝트-암장’ 사이트에는 ‘공소시효’가 따로 없습니다. ⟨시사IN⟩은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

글: 고제규 김은지
구성 디자인: 안희태
인포그래픽: 최예린